24년 겨울, 가짜 오리털 패딩 사태를 바라보며


25년의 시작이자, 24년의 겨울이 물러가지 않고 이어지던 시기, 국내 한 대형 의류 판매 플랫폼을 통해 불거진 가짜 오리털 패딩 사태의 여파가 어쩐지 심상치 않다. 플랫폼에 입점된 소수 브랜드의 ‘단순한 관리소홀’로 치부되나 싶더니, 줄줄이 이어진 폭로와 의혹 제기는 그간의 겨울 의류 전반에 대한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의심과 맞물려 국내 대형 유통업체로까지 번졌고 기어이 패션계 전체의 이슈로 커져 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오리털 다운으로 광고한 옷에 폴리에스터가 채워져 있는가 하면, 구스(거위) 다운에 오리털을 넣고 판매하는 등 수 많은 사례가 봇물처럼 터져나왔고, 실제 오리털 등의 충전비율은 광고와 케어라벨에 기재된 것과 비교해 처참하기 이를데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언론은 앞다투어, 이른바 K-패션의 신뢰 위기가 시작되었다고 보도하기 시작했고, 이에 이번 사태는 아무래도 지난 겨울의 ‘(한때) 쓰라린 추억’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당장 25년 F/W 시즌부터, 단순히 오리털 충전 소재 뿐 아닌 구스, 캐시미어 등 이른바 ‘고급 충전재 및 소재‘ 전반으로 그 여파가 확산되어 갈 것으로 보이고, 패션업계 전반에 ‘혼용율 검증’이라는 허리케인급 이슈를 당겨올 것이 자명하다.

올해부터 불어닥칠 파장은 플랫폼 업체가 내놓은 자구책과 제재 기준을 통해 어느정도 확인이 가능해 보이는데, 다운과 캐시미어 아우터의 경우 시험성적서 미제출시 신규입점은 물론 기존 판매자의 판매 역시 즉시 중단되도록 조치하기로 했으며, 케어라벨의 표기오류와 확인절차 누락 등 사소한 정보고시 위반행위 역시 철저히 단속하겠다고 나섰다. 또한, 플랫폼 차원의 무작위 성분검사 의뢰, 원부자재 및 공임을 감안해 혼용률이 의심되는 제품에 대한 블라인드 테스트 등 제작사의 지속적인 성분 및 품질관리에 대한 책임이 이루어지도록 압박하고 나서고 있다.

이제 의류의 ‘혼용율‘은 의류공급자가 소비자에게, 단순히 케어라벨에 적어 고시해야 하는 소극적인 의무사항도, 그 혼용율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광고와 마케팅과 같은, 가격이 남다른 이유를 설명해 줄 적극적인 도구의 역할도 넘어, 브랜드와 그 운영 기업의 ’도덕적인 잣대’로까지 여겨질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오랜 기간 해외 위주의 의류제조업에 종사해온 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가 단기간에 극복이 쉽지 않을 것 같은 이유를 의류 제작 시스템상의 문제를 들어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우선, 이미 국내 뿐 아닌 전 세계 대부분의 브랜드는 패딩과 같은 기능성 의류 생산을 중국과 같은 해외 공장에 전량 의지하고 있고, 캐시미어와 같은 고급 소재 역시 대부분 중국으로 한데 모여 가공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충전 소재의 충전과 같은 특수 공정은 기피 공정으로 분류되어 생산국 내에서도 재외주와 하청에 의지하고 있어 매우 복잡한 밸류 체인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국내 업체의 관리와 감독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사태 이후 대형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의류와 관련된 대부분의 밸류 체인을 형성하고 있는 중국으로부터 겨울 의류용 원단과 부자재를 소싱해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등 공임이 더 저렴한 주변국으로 이동시켜 생산하는 등 제조 환경 역시 더욱 다변화 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라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게다가 무리한 납품 단가 요구와 같은 타이트한 생산 여건이라면 이러한 복잡한 원부자재 소싱과 생산 과정 어딘가에서 고의적인(?) 사고가 발생할 확률과 빈도 또한 높아지게 된다.

특히 덕다운과 구스다운, 캐시미어와 같은 자연 소재를 이용하는 의류의 경우, 매 해 글로벌 수급 환경에 따라 경매를 통해 원물의 가격이 정해지고 있는데, 이미 재작년 하반기 즈음부터 수요가 급증, 소재 확보에 비상이 걸려있는 상황이고 수급 환경은 매년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나마 미주 시장과 같은 대규모 시장 오더, 또는 글로벌 대기업과 같이 연단위 생산이 가능한 브랜드들은 이러한 수급환경에도 소재를 선점해 변수를 통제해 가며 생산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국내의 많은 브랜드들은 점점 원재료 확보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작년 가을, 급작스러운 충전재 품귀 현상이 발생해 생산 단가가 폭등하는 일도 겪은 만큼, 이로 인한 올해 겨울 의류의 생산 단가는 전년 대비 상승할 가능성이 짙어 보인다.

글로벌 수급 환경이 이렇다 보니, 자의든 타의든 혼용율을 맞추기 어려운 일이 생산 과정과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곤 한다. 추가 생산 중 재료 수급이 막히거나, 그 사이 단가가 폭등해 기존의 혼용율을 맞추기 어려워지는 등 말이다. 경험상 이러한 시장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항시 주시하고 있어야 (일부) 공장의 일탈 행위 역시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이미 필자의 회사는 몇 해 전부터 충전작업과 같은 공정은 하청 공장이 아무리 멀고 외지에 있다 해도 현장에 직원을 파견하고 있고, 상해(상하이)의 KC 시험 출장소 등을 통해 수시로 자체 인증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품질관리에 어려움이 커지던 터라,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조만간 터질 일이 터졌다는 다소 시니컬한 생각도 들곤 한다. 애초에 의도적으로 소비자를 기망하려 했다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거니와, 관리와 검증의 인적, 물적 한계 등으로 인한 이러한 ‘피해 아닌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일이 터진 후 시시비비를 가리는 법적, 도덕적 책임 공방에 의존하기 보다는 현지 생산업체와의 지속적인 신뢰를 구축하고 제작 환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을 권하고 싶다.

또한 초기 제공 샘플만 확인하고 그를 토대로 발행된 시험성적서 만을 그대로 믿는다면 이 역시 낭패를 볼 수 있으니 메인 생산 전반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검증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믿을 수 있고 책임감 있는 현지의 파트너를 물색해 함께 소통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의류의 ‘혼용율‘은 마치 식품위생법상의 의무표기사항과 같이, 제공업체의 무한 책임을 의미하는 엄격한 보증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여지므로, 부디 이번 사태를 통해 겨울 의류와 기능성 의류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되고, 업계에 만연해 온 이른바 묻지마 혼용율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길 바래본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보기 : https://blog.naver.com/fabric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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